오늘 저녁, 정말 오랜만에 팀원들과 고깃집에 갔습니다. 다들 바쁘고 지쳐 있었는데, 숯불 위에 소고기를 굽는 그 시간만큼은 정말 평화롭고 즐거웠어요. 고기가 익는 소리, 연기 사이로 오가는 대화, 고기를 뒤집는 손길까지… 그렇게 다들 웃으며 먹다 보니 문득 한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더 셰프.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다룬 게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주방이라는 전장이 담긴 영화입니다. 미식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 한 편 꼭 보고 나셨으면 좋겠어요.
[고기를 굽다가 떠오른 한 편의 영화(주방)]
사실 오늘처럼 팀원들이랑 한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운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엔 말수 적은 선배도 잘 먹고, 후배는 양파 장아찌만 열심히 집어 먹고… 소고기가 참 신기한 게, 한 접시에 누가 얼마나 먹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 자체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겁니다. 고기 굽는 속도에 따라 대화의 박자도 달라지고요.
불 앞에서 고기를 굽다 보니, 예전에 봤던 영화 더 셰프가 생각났습니다. 브래들리 쿠퍼가 미슐랭 셰프로 나오는 영화인데, 단순히 고급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진짜 ‘주방’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줘요.
영화 속 주방은 꽤 살벌합니다. 실수하면 욕 나오고, 실력 없으면 바로 잘리고. 그런데도 그 공간에서 완벽한 음식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졌어요. 오늘은 고기 하나 굽는 것도 왜 이렇게 신중해졌는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그때 본 그 장면들이 떠올라서였겠죠.
더 셰프는 그런 영화예요. ‘요리는 감정이다’ 이런 따뜻한 말도 좋지만, 그 이전에 이건 ‘기술’이고 ‘집중’이고 ‘자존심’이라는 걸 보여주는. 미식을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요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봐야 할 영화입니다.
영화 정보
제목: 더 셰프 (Burnt)
감독: 존 웰스
장르: 드라마, 요리, 미식, 인간관계
개봉: 2015년
출연: 브래들리 쿠퍼, 시에나 밀러, 다니엘 브륄 외
러닝타임: 101분
[맛은 타이밍, 실수 없는 정확함(더 셰프)]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했던 건 주방의 분위기입니다. 손 하나 까딱 안 해본 사람이 보면 “이게 요리 영화야? 군대야?” 싶을 정도로 엄청 빡셉니다. 셰프 아담 존스는 완벽주의자고, 주변 사람들도 그 기준에 맞춰야 하죠. 조금만 느려도, 간이 어긋나도, 플레이팅이 맘에 안 들어도 바로 뒤집힙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나오는 요리는 정말 황홀하죠.
실제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은 진짜 미슐랭급입니다. 불 조절, 소스 농도, 식감, 플레이팅까지 다 신경 쓰고, 주방은 전쟁터처럼 돌아가요. 오늘 내가 불판에서 고기를 굽던 거랑 비교할 순 없겠지만, 기름 튀기고 온도 맞추고 익힘 체크하는 내 손이 순간 진지해지더군요. 이 영화가 그런 힘이 있어요. ‘요리는 그냥 만드는 게 아니구나’를 체감하게 하죠.
그리고 이건 요리만의 얘기가 아니에요.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이면, 거긴 무조건 치열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 영화는 주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까지 보여줍니다. 맛있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음식만 보지 않고, 그걸 만드는 사람들의 땀도 같이 보게 될 겁니다.
[완벽을 좇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한 접시(맛)]
아담 존스는 미슐랭 스타 셰프였지만, 자만과 실수로 모든 걸 잃고 잠적해 있던 인물입니다. 그러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오고, 예전 동료들과 새로운 팀을 꾸려 ‘3스타’를 목표로 달려가죠. 영화는 그 과정에서 갈등, 불안, 경쟁, 그리고 희미한 연대까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결국 맛이 모든 걸 말해준다는 그 철학이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은 정말 예술에 가까워요. 딱 봐도 맛있어 보이고, 조리 과정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세밀합니다. 재료 다듬고, 익힘 확인하고, 플레이팅 정리하고…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프로’들의 손끝에서 나옵니다. 괜히 요리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입소문이 난 게 아니더군요.
음식이란 게 누군가를 위한 거잖아요. 아담은 그걸 알면서도 자기 완벽주의에 갇히고, 동료들과 부딪히고, 깨지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 변화를 보면서 문득 오늘 불판 앞에 앉아 있었던 우리 팀원들이 떠오르더군요. 다들 각자 다른 스타일이고 속도도 다른데, 고기 앞에서는 희한하게 조율이 되잖아요. 먹는다는 건, 그 자체로 사람 사이의 간격을 줄여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 좋은 음식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더 셰프를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요리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맛있게 먹는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지만, 그 너머에 더 많은 게 있잖아요. 만들면서 생기는 집중, 기다리는 시간, 함께 먹는 리듬, 나누는 대화. 그게 다 음식이라는 행위 안에 녹아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알려줍니다.
오늘 팀원들과 고기를 먹으며,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음이 났고, 다들 피곤했을 텐데 눈이 반짝였어요. 그 순간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다시 보니까, ‘미식’이라는 게 꼭 비싼 요리나 복잡한 조리법을 뜻하는 게 아니란 걸 새삼 느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는 그 순간, 그게 바로 미식이죠.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번 보세요. 그리고 다음에 소고기 구울 일이 생긴다면, 오늘처럼 한 점 한 점 정성스럽게 굽고, 옆 사람의 접시에도 살짝 얹어주는 그 여유를 기억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