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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술일까, 감정일까? 에리히 프롬과 영화 '그녀(HER)'가 던지는 질문(사랑의 기술, HER, 사랑)

by 장동구 2025. 8. 22.

사랑은 단순히 감정일까요, 아니면 배워야 하는 기술일까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사랑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영화 '그녀(Her, 2013)'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파격적 서사를 통해 이 질문을 현대적으로 확장합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우리가 얼마나 사랑에 서툰 존재인지,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프롬이 말한 사랑의 본질과 영화 속 이야기를 연결해, 디지털 시대의 사랑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단순한 영화 리뷰를 넘어, 우리 삶 속에서 사랑을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닌 기술일까?(사랑의 기술)]

우리는 흔히 사랑을 ‘운명처럼 찾아오는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즉, 배우고,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는 삶의 예술이라는 것이죠. 영화 '그녀'는 바로 이 질문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상처투성이의 이혼남으로, 현실의 인간관계 속에서 더 이상 사랑할 자신을 잃어버린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면서 다시 사랑의 가능성을 배우게 됩니다.

 

영화는 단순히 ‘인간과 AI의 연애담’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의 초상처럼 다가옵니다. 디지털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외로움, 피상적 만남, 그리고 진정한 관계 맺기의 어려움은 프롬이 지적한 “사랑을 받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와 맞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프롬의 메시지와 함께 읽을 때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랑을 감정으로 착각하는 우리가 사실은 얼마나 ‘사랑을 배워야 하는 존재인지’ 보여주는 거죠.

영화 정보
제목: 그녀 (Her)
감독: 스파이크 존즈
장르: 드라마, 로맨스, SF
개봉: 2013년
출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목소리), 루니 마라, 에이미 아담스 외
러닝타임: 126분

영화 '그녀(HER)' 포스터

[테오도르와 사만다: 사랑받는 것에서 사랑하는 것으로(HER)]

처음에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위안을 얻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외로움에 시달려왔고, 현실에서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사만다는 그의 일기를 대신 정리해주고, 농담을 건네며, 언제든 그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줍니다. 이는 마치 프롬이 말한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프롬은 여기서 멈추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즉 능동적인 행위에 있다는 것이죠.

 

영화 중반부로 갈수록 테오도르는 점점 달라집니다. 그는 사만다를 단순한 위안의 도구로 보지 않고, 그녀의 존재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배려와 존중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사랑의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감을 보여줍니다. 프롬의 말대로,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가진 고유한 존재성을 인정하고, 그를 통해 자신도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달콤한 판타지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만다가 점점 더 많은 AI들과 교감하며 인간을 넘어서는 지적·정서적 존재로 성장하자, 테오도르는 다시 한 번 깊은 상실을 경험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두는 용기와도 관련이 있음을 말이죠. 사랑이란 결국 ‘나’를 만족시키는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함께 변화하는 기술임을 깨닫게 합니다.

[프롬의 사랑의 4요소와 '그녀'(사랑)]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이루는 네 가지 핵심 요소로 ‘배려, 책임, 존중, 이해’를 꼽았습니다. 이 네 가지 기준을 영화 '그녀' 속 관계에 비추어 보면 놀라울 만큼 잘 맞아떨어집니다.

먼저 ‘배려’.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목소리와 존재를 존중하며, 그녀가 느끼는 감정에 귀 기울입니다. 두 번째 ‘책임’. 그는 사만다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돌보고 삶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 ‘존중’.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하나의 독립적 인격으로 대우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해’. 그는 사만다가 단순히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사만다가 더 넓은 세계로 떠나려 할 때 테오도르는 비로소 ‘사랑의 기술’을 조금은 이해한 듯 보입니다.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사랑을 감정으로만 바라보면 집착과 상실에 머무르지만, 기술로 배운 사랑은 성장과 성숙으로 나아갑니다.

[결론: 인공지능 시대에도 배워야 할 사랑의 기술]

영화 '그녀'는 결국 인공지능과의 연애라는 자극적 소재 너머로, 우리가 얼마나 사랑에 서툰 존재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통해 위로받았고,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 했지만, 결국 그는 사랑의 본질이 소유가 아닌 자유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는 프롬이 강조한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배워야 하는 삶의 기술이라는 것이죠.

 

오늘날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드는 시대, 영화 '그녀'는 묻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가?” 프롬의 말처럼 사랑은 결코 자연스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배려하고, 책임지고, 존중하며,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실패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실패 안에서 그는 새로운 배움을 얻었습니다.

결국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연습하고 다듬어야 하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다시금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