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서브스턴스’, 리얼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육체, 분리, 통제)

by 장동구 2025. 5. 28.

영화 '서브스턴스' 포스터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단순한 슬래셔물이나 고어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신체공포 장르의 외피를 쓰되, 여성의 육체가 어떻게 사회적 시선과 규범 속에서 소비되고 왜곡되는지를 근본적으로 파고듭니다.

 

영화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강박,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체성의 분열과 통제 상실을 정밀하게 보여줍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극단적으로 과장된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신체 이미지에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 공포는 칼날이나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육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비롯된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공포의 중심, 해방 혹은 속박(육체)]

영화 ‘서브스턴스’는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나이 든 자신의 육체에 대해 극심한 불만과 혐오를 느끼며 시작됩니다.

 

그녀는 더 이상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고,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습니다.

한때는 스타였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코랄리 파르자 은 엘리자베스의 몸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거울과 조명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며, 외부 시선에 의해 해체되는 자아를 상징화합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서브스턴스’는 단순히 젊음을 되돌려주는 약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신체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이며, 사회가 요구하는 육체적 완성도에 대한 극단적 환상입니다.

 

이 신체는 곧 아름답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공포스럽습니다.

 

영화는 이 새로운 육체가 완벽해질수록 주인공의 정신이 무너지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의 변화가 아니라, 여성에게 강요된 ‘보이는 몸’에 대한 광기 어린 반응입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여성의 신체가 통제 불가능해질 때 발생하는 위기감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수'가 점점 엘리자베스를 대신하며 현실을 잠식해 나가는 과정은, 신체의 주체성과 인간성의 붕괴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영화는 육체가 자율성을 잃고 오직 타인의 욕망과 시선에 의해 조형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멀어지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아와 신체, 경계가 무너질 때(분리)]

영화의 전개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통해 자신과 분리된 자아를 만들어내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자아 분리와 정체성 해체라는 메타포를 본격적으로 활용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수십 년간 대중에게 보여준 ‘완벽한 자신’을 갈망하며, 진짜 자아를 억압합니다.

‘수’는 그런 욕망이 물리적으로 실현된 존재이며, 동시에 그녀가 부정해 온 육체의 그림자입니다.

 

이 둘의 분리는 단순히 ‘늙은 나’와 ‘젊은 나’의 대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가 바라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이며,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가 충돌하는 지점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영화는 이 분리를 통해, 정체성이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외부 요인에 의해 와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특히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분리의 과정을 거울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거울 속 ‘나’는 실제의 ‘나’와 다르며, 점점 그 괴리가 커집니다. 시각적으로는 동일한 배우가 두 인물을 연기하지만, 조명과 표정, 몸의 움직임을 통해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관객은 정체성 분열의 감각을 체감하며, 자아와 육체의 연결이 끊어졌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누구의 욕망이었는가(통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핵심 질문은 ‘이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로 집중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통해 다시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가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면서 그녀는 점차 통제력을 잃습니다.

 

그녀가 만든 존재는 결국 그녀를 대체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려 합니다. 이 과정은 통제의 역전이자, 공포의 핵심입니다.

 

이 통제는 이중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엘리자베스 개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 그녀를 지배하게 되는 ‘내면의 통제력 상실’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가 여성의 몸과 나이를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 비판입니다.

 

영화는 이 두 가지 흐름을 교차시키며, 자신이 만든 것에 의해 파괴되는 아이러니를 강화합니다.

 

감독은 이 테마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물의 공간적 제약, 색채 왜곡, 거울 속 왜곡된 시선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합니다.

 

특히 반복되는 신체 해체 장면은 통제 실패를 체감하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입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내가 만든 욕망이 나를 지배하게 될 때, 진짜 공포는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결론: 현실보다 더 날카로운 상상

영화 ‘서브스턴스’는 단순히 육체가 변형되는 공포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정체성, 사회적 시선, 자아 통제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우리가 원하는 삶과 실제 욕망 사이의 괴리를 직면하게 만듭니다.

 

진짜 공포는 외부가 아니라, 욕망과 자기 인식이 충돌할 때 생기는 내면의 균열에서 비롯됩니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바로 그 경계를 정교하게 파고들며,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직면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