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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영화 ‘퓨리’로 보는 전쟁의 참혹함 (인간성, 공허함, 파괴)

by 장동구 2025. 6. 30.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영화 '퓨리'의 포스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이 점점 격화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민간인의 희생, 무너진 도시, 절망적인 국제 정세는 '전쟁'이라는 단어의 비극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스크린 속 전쟁 영화를 단순한 오락으로만 소비할 수 없습니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퓨리’는 서로 다른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이 전쟁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무엇을 잃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영화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와 참혹함을 돌아보고, 왜 전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총 대신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인간성)]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주인공 크리스 카일은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저격수로, 수많은 전투에서 생존자이자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내면은 점점 무너져갑니다. 그가 어린 소년을 향해 조준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은, 전장에서의 인간성과 도덕 사이의 충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귀국 후에도 그는 가족과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텅 빈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갑니다. 전쟁은 그에게 명예와 생존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거의 앗아갔습니다.

카일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의 눈빛에서 사라진 생기는 전장의 비극이 육체적 상처뿐 아니라 정신적인 황폐함을 남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퓨리’에서도 인간성의 붕괴는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워대디는 병사들에게 생존을 위해 잔혹함을 강요하며, 신병 노먼에게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현실을 주입합니다.

초반엔 사람을 쏘는 것조차 망설이던 노먼이, 후반에는 무표정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인간이 전쟁 속에서 얼마나 빠르게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노먼의 변화는 전쟁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왜곡하고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결국 이 두 영화는 전쟁이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잠식하는 비극임을 역설합니다.

[죽어도 끝나지 않는 전장의 그림자(공허함)]

‘퓨리’는 전쟁의 마지막 단계, 독일 전선의 초토화된 환경에서 시작합니다. 전우를 잃고, 끊임없이 새로운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병사들은 모두 말라 있고 지쳐 있습니다.

 

특히 전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은 심리적 폐쇄감과 공포를 압축적으로 담아냅니다. 전투의 승패보다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린 그들은 끊임없이 죽음을 곁에 두고 공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전차 속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을 버텨내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죽음보다 깊은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전장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영혼을 옥죄는 거대한 감옥과 다름없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역시 크리스의 귀환 이후 그의 삶에 남은 공허함을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전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친구와의 상담, 사격장 교육 봉사 등 일상에 복귀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지만, 전쟁은 그를 완전히 놓아주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전장을 떠났어도, 마음속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그것은 그의 마지막 장면이 말없이 암시합니다. 크리스 카일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개인의 삶을 어떻게 좀먹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전쟁의 그림자는 승패와 관계없이 참전 용사들의 삶에 영원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다.(파괴)]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크리스의 죽음을 통해 전쟁의 끝이 결코 평화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전쟁 영웅으로 귀환했지만, 그 역시 또 다른 참전 군인에 의해 목숨을 잃습니다. 이는 전쟁의 후유증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전쟁이 남긴 잔재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그의 죽음은 전쟁이 결코 영웅적인 서사로만 기억될 수 없음을, 그 비극적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결국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파괴를 남깁니다.

 

‘퓨리’에서는 탱크 한 대를 마지막 보루로 삼아 독일군과 맞서 싸우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워대디를 비롯한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하며, 탱크는 마치 죽음을 담은 관처럼 묘사됩니다. 살아남은 노먼조차도, 생존의 기쁨보다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허무함을 안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승리 없는 승리, 의미 없는 파괴. 영화는 결국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이 장면은 전쟁의 궁극적인 허무함을 극대화하며, 피로 얼룩진 승리가 과연 진정한 승리인지 질문하게 만듭니다. 전쟁의 파괴는 단순히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마저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퓨리’는 각각 이라크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겪는 붕괴와 파괴는 동일합니다. 이 영화들은 단순한 전쟁 액션물이 아닙니다. 전쟁이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며, 영웅담 이면의 진실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단순히 ‘전쟁은 나쁘다’는 진술을 넘어서, ‘왜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떠올리게 됩니다.

[결론: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진정한 승리를 안겨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총성과 전차의 위용이 아니라, 그로 인해 무너진 수많은 삶들입니다. 전쟁은 단 한 번도 정당화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현실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전쟁은 인류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며,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반복되는 전쟁의 비극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합니다.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쟁 없는 미래를 향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닌, 전쟁이라는 재앙의 본질을 직시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작은 경각심이 확산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