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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러브레터'가 다르게 기록한 시간과 감정(전개 방식, 첫사랑, 감정의 정리)

by 장동구 2025. 6. 13.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영화 '러브레터' 포스터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첫사랑일 것입니다.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일본 영화 '러브레터'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서사 구조를 통해 이 감정을 기록합니다.

한 편은 거친 현실 속에서 청춘을 회고하고, 다른 한 편은 조용한 눈 속에서 과거를 호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시간의 전개 방식, 첫사랑의 묘사법, 감정의 회수와 정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두 작품을 비교하며, 각기 다른 문화권의 첫사랑 해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남는다 (전개 방식)]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는 주인공 커징텅이 션자이이를 떠올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로, 이야기 대부분이 회상으로 진행됩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감정, 장난, 설렘, 후회는 현재의 시점에서 복기되며, 기억의 순서가 아닌 감정의 강도에 따라 편집됩니다.

 

예를 들어, 션자이이가 벌을 서는 장면에서 커징텅이 그녀를 따라 벌을 받는 장면은 이야기상 중요하지 않은 순간일 수 있지만, 커징텅의 감정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으로 묘사됩니다.

이 장면은 첫사랑의 진심과 충동, 그리고 그 감정의 크기를 기억이 얼마나 강하게 소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러브레터'는 편지를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두 개의 시간 축을 병렬로 배치합니다.

 

후지이 이츠키를 향한 편지가 시작점이 되어, 고등학생 시절 또 다른 ‘이츠키’와의 교감이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는 말보다 침묵이 많으며, 느린 리듬을 통해 과거의 풍경을 조용히 떠올리게 만듭니다.

 

특히 체육관 장면에서 도서관 책장 너머로 몰래 바라보던 시선은 아무 말 없이도 공감각적으로 전해지며, 시선과 공간만으로 감정을 전하는 일본 특유의 정적 감성을 보여줍니다.

 

두 영화 모두 과거를 재구성하지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는 다이내믹한 감정의 진폭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고, '러브레터'는 침묵과 정적 속에서 기억을 소환합니다.

 

하나는 목소리로, 다른 하나는 눈빛과 공기로 시간을 말합니다.

 

[첫사랑은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머무는가 (첫사랑)]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에서 커징텅은 션자이이를 좋아하면서 자신의 삶을 바꿔나갑니다.

성적을 올리려 노력하고, 그녀의 가치관을 이해하려 애쓰며, 한 인간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커징텅은 홀로 성장한 채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러브레터'의 후지이 이츠키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또 다른 이츠키는, 오래전 잊고 있던 감정을 되새기며 자신이 사랑받았던 존재였음을 알게 됩니다.

이때 첫사랑은 누군가를 바꾸기보다는, 잠재된 감정을 확인시켜 주는 증명서로 작용합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는  행동과 감정의 변화를 통해 첫사랑을 그리며, '러브레터'는 정체성과 감정의 복원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이 차이는 각국의 문화적 배경과도 밀접합니다.

대만은 시험 중심의 경쟁 사회로, 빠른 성장과 현실 극복이 청춘 영화의 중심 서사로 자리합니다. 따라서 첫사랑은 개인이 성장하기 위한 동력이 됩니다.

 

일본은 내면의 정서와 감정의 층위를 중시하는 문화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기억하고 음미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해석합니다.

 

이러한 문화 차이는 영화 속 인물들이 첫사랑을 통해 무엇을 얻고,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사랑은 끝나도, 누군가는 웃는다 (감정의 정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결말'은 아픕니다.

 

커징텅은 션자이이의 결혼식에 참석하며,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웃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 서로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이 대사는 이루지 못한 사랑도 진실한 사랑이었다는 선언입니다.

 

'러브레터'의 마지막은 눈 덮인 산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른 이츠키는 편지를 읽으며, 그가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몰래 그리던 연인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이 사랑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것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진실이었음을 알아챕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웃음으로 봉합하고, '러브레터'는 이미 잃어버린 사랑을 눈물로 복원합니다. 한 사람은 성장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찾아냈습니다.

 

결국 두 영화 모두, 사랑은 끝났지만 사람은 남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시간은 사랑을 지워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더 명확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두 인물 모두 감정의 끝자락에서, 진심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자신을 처음으로 마주합니다.

[결론: 기억은 사랑보다 오래 남는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러브레터'는 첫사랑을 다루지만, 방식은 매우 다릅니다.

전자는 열정과 성장의 감정으로 불타오르고, 후자는 조용한 발견과 회복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사랑보다 오래 남는 건 기억”이라는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라지지만, 우리가 그 감정을 품었던 시간과 그때의 ‘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사람을 바꾸거나, 사람을 찾게 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첫사랑을 그린 두 영화는, 아시아 영화사에 남을 감정의 시어를 남깁니다.

 

그 시절의 장난기 많은 교실이든, 홋카이도의 눈 덮인 거리든, 사랑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고, 우리는 그 감정을 다시 찾으러 갑니다.

 

첫사랑은 다시 시작되지 않지만, 그 기억은 지금의 우리를 구성하는 조용한 뼈대가 됩니다.

그것은 성장과 치유, 그리고 삶을 감싸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