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과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닙니다.
각각 실화 기반과 여성 중심 서사를 통해, 한국 사회가 수십 년간 직면하지 못한 ‘침묵의 공포’와 ‘구조적 폭력’을 날카롭게 비춥니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말하지 못하게 했는가, 그리고 그 침묵은 누구를 죽였는가.”
이 글에서는 침묵, 여성, 구조적 폭력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두 작품의 사회적 맥락과 메시지를 비교합니다.
[말하지 못한 자들의 세계 (침묵)]
'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을 쫓는 형사들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은 ‘잡히지 않는 범인’에 있지 않습니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무력한 제도, 억울한 시민들의 침묵,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부재한 현장이 반복되며, 사회 전체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감각을 자아냅니다.
“형사님, 전 그냥 나쁜 놈 잡고 싶어요”라는 백광호의 대사는 이 사회의 공적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함을 상징합니다. 침묵은 범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제도의 것이었던 셈입니다.
반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침묵의 무게를 여성의 몸을 통해 드러냅니다.
복남은 제주 외딴섬에서 일평생 착취와 폭력, 성적 굴욕에 시달립니다. 그녀는 수없이 말하고자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무시, 심지어 여자 동료들조차 그녀를 ‘문제의 근원’으로 여깁니다.
결국 침묵은 그녀를 죽음의 끝자락까지 몰고 가고, 터져 나온 폭력은 복남이라는 한 여성의 ‘고통의 기록’이 됩니다.
두 영화 모두 “말하지 못한 자들”의 세계를 조명하며, 침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고발합니다.
결과적으로 두 영화에서 침묵은 사회적 공모이며, 제도화된 외면의 반복입니다.
'살인의 추억'은 국가 시스템의 무력함이, '김복남 살인사건'은 공동체 내부의 배제가 침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극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피해자인가 (여성)]
'살인의 추억'은 형사 중심의 수사극처럼 보이지만, 정작 연쇄살인의 희생자였던 여성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영화 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들의 삶은 배경으로만 존재하며, 수사는 실패로 끝납니다.
이 영화는 여성의 죽음을 ‘단서’로만 소비하는 한국 영화의 관습을 따라가지만, 그 자체로 이 사회가 피해자들의 존재를 얼마나 쉽게 지워버리는지를 보여주는 비판적 구조를 갖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그냥 평범하게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관객은 그 ‘평범함’ 속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을 외면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반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피해자인 여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웁니다.
복남은 겉보기에 순종적이지만, 반복되는 학대와 죽음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도 딸을 지키려는 생존 본능으로 끝까지 저항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여성 피해자’의 클리셰가 아니라, 내부에서 폭발하는 분노와 비명이자 수십 년 억눌려온 ‘구조적 분노’의 표출입니다.
특히 복남이 마지막에 휘두르는 낫은 단순한 범죄 도구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외면한 여성들의 절규이자 자력 구제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살인의 추억'은 피해자를 지워버리는 사회적 무관심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피해자를 통해 사회의 폭력을 역추적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두 영화 모두 ‘피해자’라는 말 뒤에 감춰진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며, 여성의 삶을 단순한 사건의 요소로 소비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폭력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구조적 폭력)]
'살인의 추억'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단지 범인의 것만이 아닙니다.
경찰의 고문, 증거 조작, 감정에 의존한 수사 과정은 제도 자체가 폭력의 일부임을 드러냅니다. 영화는 “악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범인의 얼굴보다 그를 만들어낸 배경과 시스템의 공백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보이던 수사도, 사실은 감정과 편견에 기댄 폭력이었고, 그것이 진실을 가로막았음을 관객은 점점 깨닫게 됩니다. 폭력은 '괴물'이 아니라, 비합리와 무능력의 제도 그 자체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는 폭력이 더 직접적이며 잔혹합니다.
섬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외부의 개입이 차단된 하나의 구조적 감옥입니다.
그곳에서 여성은 일상적으로 폭행당하고, 남성 중심의 질서 속에 완벽히 종속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마을 여성들조차 복남을 도와주지 않고, 그 폭력에 가담하거나 방조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폭력’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내면화한 구조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진짜 공포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익숙함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영화는 폭력을 단지 ‘범죄’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의 부산물로 제시합니다. 그것이 영화적 공포의 실체이며, 관객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현실입니다.
[결론: 한국사회가 만든 괴물은 누구였는가]
'살인의 추억'과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서로 다른 장르, 다른 시선의 영화이지만, 결국 하나의 사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격하고도 침묵하는 사회, 피해자를 지우는 기억, 폭력을 일상으로 만든 시스템입니다.
두 영화는 “괴물이 누구냐”는 질문보다, “누가 괴물을 만들었는가”를 되묻습니다. 공포는 타인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제도와 관계, 그리고 침묵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 두 작품은 강렬하게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