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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르'로 보는 사랑의 완성의 의미(아무르, 신뢰, 의지)

by 장동구 2025. 9. 8.

요즘 들어 청첩장을 받을 일이 부쩍 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제 막 사랑의 시작점에 서고, 또 누군가는 오래도록 함께할 결심을 나누는 자리에 저를 초대합니다. 초대장을 한 장 한 장 받으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왜 늘 시작의 순간만을 강조할까. 그러나 결혼은 시작보다 지켜내는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질문 속에서 떠오른 작품이 있습니다. 노년의 부부가 마지막까지 서로를 지켜내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무르'입니다.

이 리뷰는 '사랑은 어떻게 끝까지 남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출발합니다. 청첩장을 통해 우리는 화려한 시작을 목격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끝자락에서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영화 '아무르'는 그 질문에 가장 묵직한 방식으로 대답하는 작품입니다.

[청첩장과 노부부의 대조, 사랑의 지속을 묻다(아무르)]

며칠 전, 또 한 장의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반짝이는 활자와 예쁘게 포즈를 취한 두 사람의 사진이 담긴 그 종이를 펼쳐보며,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울렁였습니다.

주변의 결혼 소식이 잦아질수록, 저는 자연스레 '결혼이란 무엇일까, 사랑을 잘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같은 질문에 자꾸 발목을 잡히곤 합니다. 시작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약속하는 순간은 사진 속에 남아 오래도록 빛납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시간, 특히 긴 세월 끝자락에서 두 사람은 어떤 얼굴로 마주하게 될까요? 이 질문 앞에서 저는 영화 '아무르'를 떠올렸습니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노부부 조르주와 안네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은퇴 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두 사람은 안네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병이 깊어지며 안네는 점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결국 모든 돌봄은 조르주의 몫이 됩니다. 영화는 화려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다만 한 사람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고집스러운 사랑의 얼굴을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청첩장의 반짝이는 시작과는 너무도 다른 장면이지요. 그렇지만 어쩌면 바로 이 마지막이야말로 사랑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아무르' 포스터

영화 정보
제목: 아무르 (Amour)
감독: 미하엘 하네케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개봉: 2012년
출연: 장 루이 트랭티냥, 에마뉘엘 리바, 이자벨 위페르 외
러닝타임: 127분

[사랑은 시작보다 지키는 힘이다(신뢰)]

영화 '아무르'의 가장 큰 울림은 '사랑은 오래 버티는 힘'이라는 메시지에 있습니다. 청첩장을 받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결혼 생활은 대부분 꽃길 같은 장면들입니다. 새로운 집, 함께하는 여행, 웃음이 가득한 식탁. 그러나 조르주와 안네의 삶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병으로 인해 삶이 무너져가는 순간에도, 조르주는 끝내 떠나지 않고 안네 곁에 남습니다. 매일의 수고와 피로, 감정의 소진이 겹겹이 쌓여도 그는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이 장면들은 우리에게 사랑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합니다. 사랑을 잘한다는 건 감정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것도, 이벤트로 상대를 놀라게 하는 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오히려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는 것, 그리고 상대의 무너짐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조르주의 모습은 그래서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합니다. 그는 연인의 아름다운 모습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가장 힘겨운 순간조차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청첩장을 받으며 시작의 아름다움에 눈이 부시다가도, 결국 우리가 맞이해야 할 시간은 이런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흔들리고, 몸이 약해지고, 언젠가 이별이 다가올 때. 그때 사랑은 남아 있을까. 조르주의 선택은 그 질문에 가장 고요한 답을 내놓습니다. "사랑은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끝을 함께하는 용기, 아무르가 보여준 사랑의 얼굴(의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은 안네의 고통뿐 아니라 조르주의 고통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한때 음악 교사였던 안네는 점차 말을 잃고, 몸을 잃습니다. 조르주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돌봄을 매일 이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무력감과 분노, 절망까지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삼키고 다시 안네 곁으로 돌아옵니다. 이 반복은 사랑이란 결국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 가깝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청첩장을 받으며 떠올린 결혼의 시작과는 달리, 영화는 끝을 보여줍니다. 많은 결혼식에서 맹세하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라는 말은 식장에서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들리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무겁고 벅찬 짐이 됩니다. '아무르'는 그 무게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랑이란 결국 상대의 존엄을 끝까지 인정하는 태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르주가 내린 최종적인 선택은 논란을 낳았지만, 그 또한 사랑의 다른 얼굴로 남습니다. 사랑이란 끝내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조차 책임지는 것이니까요. 청첩장의 환한 시작이 언젠가 이런 무거운 끝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아무르'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똑바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결론: 사랑의 완성은 끝까지 함께하는 것]

영화 '아무르'는 결혼의 시작이 아닌 끝을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고 무거운 시간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청첩장을 받으며 우리는 반짝이는 시작을 축하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언젠가 도착할 끝자락에서 서로에게 어떤 얼굴로 남아 있을지입니다. 사랑을 잘한다는 건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곁에 남아주는 것, 상대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임을 영화는 조용히 전합니다.

 

오늘 받은 청첩장을 책상 위에 올려둡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봅니다. 언젠가 내 사랑이 끝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사랑의 시작을 축하하는 것만큼이나, 사랑의 끝을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아무르'는 잊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